■ 이렇게 헤매도 언젠간 손에 쥔다, 그 왜소하고 단단할, 뜨거운 핵심.
 


 

 인간이라는 동물은 생존을 위한 판을 짠다.

 이 판의 모양에 따라

 지구상의 물질(생존을 위한 수단이 될 수 있는 것)이 흐름을 탄다.

 

 

 이 물질의 흐름은 인간이 사는 곳, 먹는 것, 입는 것을 비롯한 모든 생활방식에 강한 영향을 미친다. 이 영향으로 인한 생활의 변화가, 곧, 역사이다. 그렇다, 역사는 변한다. 그 변화 자체는 어쩔 수 없이 당연한 것이나, 그 변화를 온몸으로 맞는 인간의 감정이란 다 호수처럼 잠잠할 수만은 없는 법. 왜냐하면 인간의 주관적인 기준에서 봤을 때, ‘변화’라는 개념이 반드시 진화, 진보가 아니라 손해, 상실로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연한 두려움이 아닌가. 특히 인간이 물질에 과하게 현혹된 나머지 예술적, ‘미’적 가치를 자기도 모르게 파괴하고 난 후의 그 천박하고 황량한 풍경을 스스로 직면하는 순간, 그 순간에 대한 두려움은, 누구에게나 아주 클 것이야.

 

 

 한국의 변화는

국가 내에서 만들어진 자생적인 현상이라기보다

힘 있는 타국들에 의해 갑작스럽게 파괴되고 점령된 사태.

 

 

 과거가 다 좋았다는 것은 아니다. 과거의 물질 분배 방식에도 천박한 점은 많았지. 물질은 남성에게만 집중되어 여성을 굴복시키고, 남성 중 소수의 집단 -그 이름이 왕인 때도 있었고, 양반인 때, 상인인 때가 있었다- 에게 그것이 과도하게 집중되어 또한 나머지의 다수를 굴복시켰으니.

 

 

 그러나 그 물질을 이용하여 생성되는 것들, 즉, 그 땅에서 자라난 인간들이 만든 ‘미’적 가치들은 그 민족의 후세들에게, 또 타국의 후세들에게도, 단순한 물질에서 얻을 수 없는 비물질적인 행복을 만들어냈다. 그것들이 그 시절 그네들의 삶을 위로하고 또 신명나게 한 것이다.

 

 

 그 시절과 멀고 먼 후손이라 하더라도, 아직 김치 먹고 밥 먹고 가끔 한복도 구경하는 인간이므로, 같은 땅에서 풍겨온 그 예술의 향기를 무의식 중에 그리워하지 말란 법 있는가. 현대를 점령한 ‘자본주의’는 본질적으로 타국의 것이며, 그리하여 그 시스템 하에서의 물질의 흐름은 강제된 것이므로 여러모로 불편할 수밖에. (아니, 타국인들도 그리 힘들어한다며!) 그러므로 현대사회를 바삐 살아가다가도, 특히 한국인에게는 문득 지금의 삶에 대한 기쁨보다는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더 잦게 느껴질 것이다. (한국인 뿐 아니라 대부분의 아시아인이 그러하리라.) 그러나 이러한 불행의 책임을 현대의 한국인이 모두, 연약하여 외세에 휘둘린 전 세대 인물들에게만 돌리는 것도 비겁한 처사. 왜냐하면 현 시대에 난무하는 포크레인과 시멘트와 획일적인 건축은 현 세대의 인간이 벌여놓았으니.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들이 물질에 종속된 비물질적 행위를, 전혀 멈추려 하지 않기 때문. 떨쳐버리지 못한 것이다.

 

 

 이러한 파괴는 서울에서 가장 크게 일어났다 해도 과언이 아닌데, 유독 서울의 북촌은 참 독특하다 생각된다. <서울, 북촌에서>의 저자는 가회동과 삼청동 중심의 종로구 일대 북촌을 통해 전통한옥의 어제와 오늘을 좇는다. ‘집’의 역사를 추적하는 것은 곧 시대상의 변화를 나타내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순정효 황후의 송현동 친정집이 일제 강점기 일본 식산 은행의 관사 터로 팔렸다가 해방 이후 미국 대사관 직원 관사가 들어서고, 지금은 삼성 그룹 소유의 빈터가 되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시대의 흐름을 증언한다.

 

 

 조선 시대 서울을 형성하던 궁과 고래 등 같은 양반집들이 헐려 나간 뒤, 보호 정책 아래 마지막 남은 한옥 900여 채는 대부분 30년대 이후 근대 도시 한옥으로 지어진 것이다. 저자는 북촌 하면 으레 양반 대가들만 살았던 것처럼 말하는 세평에 반대하며 나름의 아름다움을 지닌 소박한 집들에도 주목한다. 북촌의 역사와 삶을 같이해 온 주민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굳게 닫힌 대문 안 한옥 생활의 묘미를 전하고자 하는 것이다.

 

 

 또한 그의 말에 따르면, 북촌은 문화의 권력화와 거대 상업 자본에 염증을 느낀 예술가들이 모여 소규모 대안실험, 문화 공간을 꾸려 가는 중심지이다. 이 곳에서 한국무용가 공옥진의 창무극이 초연되었고 김덕수 사물놀이가 전성기를 맞기도 했다. 또한 실험적인 작품을 선보이는 젊은 미술가들의 오랜 활동 공간인 ‘인사 미술 공간’도 2006년 인사동에서 이곳 원서동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비주류 문화를 이끌어 가는 젊은이들의 모습도 보인다. 이는 소위 ‘고급문화’의 장막을 걷고 자연스레 스며드는 진정한 문화의 의미를 돌아보게 하며 또한 느린 삶의 미학을 보여준다.

 

 

 물론 저곳 역시 변화하고 있다. 한옥 대신 획일화된 주택이 들어서고 고층 화랑이 세워지고 있다. 요즘의 인사동처럼 빛을 잃을까 많은 우려의 목소리도 여기저기서 흘러나온다. 저자도 그러한 우려를 감추지 않는다. 서울시의 한옥 보존 정책은 애초에 옛 것보다는 도시적인 효율성에 입각하여 재단하고 왜곡한 한옥만을 무더기로 세우고 있단다. 이를 주목하여 저자는 시종일 옛 문화의 가치에 대한 애정과 그것이 사라져가는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을 말한다. 독자들도 이러한 아쉬움이 있을 것이다. 물질은 중요하지만 생존의 수단이지 생존의 이유는 아니잖아.

 

 

사실 나도 민족을 과하게 강조하는 말은 모두 싫어하는 편이라

굳이 민족의 뿌리니, 조상의 얼이니 하는 식의 설득을 입에 올리는 걸 존나 싫어한다.

 

 

그러나 한국 전통의 가치라는 것, 그것을, 

그 누구라도 날것 그대로 느껴볼 판과 공기가 활개친다면

현대의 문화는 지금보다 더욱 풍요로워질 게 분명하다.

 

 

근거는?

개나 줘버리고.

 

 

그저 난 그런 게 좋더라.

얼쑤절쑤, 의 어감이 좋고,

덩실덩실, 리듬감이 좋고,

너울너울, 의 곡선이 좋고,

 

 

그런 걸 보려면,

옛것이 해먹을 자리가 보존되어야 가능하다니께.

 

 

넉넉하고 촉촉한 한국이 되길 희망한다.

 

 

보다 진보된 ‘변화’란,

그러한 것을 지칭하는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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