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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3.08 01:29

TV없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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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사는 집으로 이사를 오면서 나는 TV를 없앴다.

 TV없는 삶을 선택한 첫번째 이유는 수면이었다. 생각이 엉퀴면서 잠을 잘 못 자니까 생각을 덜 하려고 텔레비전을 켜면, 또 사람이 단순한지라 그거 보느라 잠을 안 자거나 켜놓고 잠들기 일쑤여서 수면의 질이 영 낮았다.

두 번째 이유는 식생활태도. TV를 켜놓고 밥을 먹으면 나도 모르게 세월아 네월아 하면서 밥을 먹고 먹고 또 먹는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그걸 알게 되었을 때는 이미 겉잡을 수 없이 살이 쪄버려서 (...) 이대로 내가 나를 내버려두면 조만간 우주로 발사될 것 같았다. 우스갯소리가 아니라 진심으로. TV 퇴출 이후 오랜 시간 동안 뭔가를 먹는 일은 거의 없어졌고 그로 인해 식생활패턴도 비교적 안정을 찾게 되었다.

세 번째 이유는 TV수신료. 나에게는 마치 부당한 세금처럼 느껴졌다. 심지어 ㅇㅁㅂㄱㅎ 정권 들어서 KBS MBS SBS는 시종일관 아주 정권의 개가 되어 찬양일색은 물론이요 진실 은폐엄폐하기는 특기가 되었다. 진짜 ... 꼴불견이었다. 어차피 보고싶은 건 TV가 아니어도 인터넷에 볼 수 있는 방법이 널렸으니 그만 없애버려도 되겠다 싶었다.


이후로 우리집은 매우 고요했고 나는 점점 더 자유롭고 조용한 환경에서 망상에 빠져들 수 있었다. 특히 라디오나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기에 무척 좋았다. 물론 대부분의 시간은 상상공상망상으로 채워졌지만, 그게 나쁘지 않았다. 본 영화(타짜, 신세계, 쇼생크탈출 등)나 드라마(그들이 사는 세상)를 보고 또 보는 것이 취미가 되었다. 그 역시 나쁘지 않았다. 


단 하나 나쁜 것은 내가 점점 영상물들을 멀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무뎌진다는 것, 무감각해진다는 것, 상실한다는 것. 나는 가뜩이나 없었던 시각적인 센스를 거의 잃어버리다시피 하게 됐다. 생각이 곧장 머릿속에서 시각화될 수 없다는 것은 글을 쓰는 것 역시도 어려워진다는 것을 뜻한다. 이미지나 영상툴을 조금씩 다루면서 그 문제가 매우 심각하게 다가왔다.  게다가 인터넷이나 폰으로 조각영상을 보는 생활이 계속되자, 영화나 드라마 같은 긴 영상을 집중해서 보는 것이 아주 힘들었다. 원래도 텍스트를 더 좋아하는데 습관적으로 틀어놓던 TV가 사라지니 굳이 긴 영상을 볼 일이 없고 점점 멀어지게 된 것이다. 단 하나의 단점이라고 말하기에는 꽤 큰 문제가 발견된 것이다.


글쎄.

앞으로 어떻게 될까. 굳이 너무 많은 영상을 억지로 볼 필요가 있을까. 보고 싶지 않은 것은 안 보면서 살아도 되지 않을까. 모든 걸 다 알고 할 줄 알아야 할 이유는 없다. 심지어 잘해야 할 이유 같은 건 더더욱. 그러니 강박에서 좀 더 벗어나 보도록 하자,고 나를 달랬다. 모든 건 때가 있다고, 하고 싶어질 때 하면 된다고. 괜찮다고.


나는 당분간 계속해서 TV없는 삶을 고수할 생각이다. 기억력이 점점 전만 못함을 느낀다. 그 자리를 흘러가는 TV프로그램으로 채우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잃어가는 시각적 감각에 대한 불안함보다 월등하게 크다. 그러니, 나에게 아직 괜찮다고 말을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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