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혜교의 처연한 연기도 기대가 되었지만
나는 이 감독이 사람 속을 이미지로 구현해 내는 방법을 참 좋아한다.
올 초에는 일요일 아침이면 늘 미술관 옆 동물원을 보았었다.
심은하와 이성재의 자잘한 다툼과 상황, 그 속에서의 심경 변화, 나래이션, 시나리오와 교차되는 이야기들...
송선미의 어색한 연기를 제외하면 아직도 너무나 볼 만한 영화이다.
이정향 감독의 [오늘]
쉬운 용서가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에게 얼마나 부정적인지.
반성하지 않는 자에게, 용서라.
한 해를 살아오면서
나 스스로가 용서를 구해야 할 짓도 많이 했고
내가 생각하기에는 사과를 받아야 할 일도 많았는데.
나는 어쩌면 '너그럽고 그릇이 큰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위해
너무 쉽게 쉽게 나의 상처를 덮고, 용서하며 살아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미안하다고 말해야 할 때, 반드시 미안하다고 말하며 살자 다짐했던 것이
그럴 땐 참 좋았다.
그러나 내가 꼭 사과를 받고 싶은 일에 있어서도
이러면 너무 소심해 보이지 않을까, 나이값 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노심초사하며
내 안의 상처는 채 아물지도 않았는데
괜찮아, 뭐 어때, 그럴 수 있지...
이런 말로 쉽게 문제를 덮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 이후로도 오랫동안 아팠고
헤어날 수 없는 일도 많았다.
반성하지 않는 사람에게 용서는
별 것 아닌 일이다.
속 시원히 잊어버린다.
그런 쉬운 용서는
스스로에게 또 한 번 가해자가 되는,
그래서 결국 스스로를 피해자임과 동시에 가해자인, 슬픈 상황에 처하게 한다.
살면서 배우는 많은 것이 있지만
나는 이 영화를 보지 않았음에도 어쩐지, 벌써 가슴이 찡하다.
내가 나를, 더 나은 사회적 인간으로 만들기 위해서 나에게 저지른 한뼘 더 깊은 범죄를 반성한다.
힘들다,
아프다,
싫다,
하기 싫은 이 말들은
사실 듣기도 싫었기 때문에
함께 있는 사람이 저런 류의 말을 하게 되는 것이 싫어서
더 많이 움직이려고 했었고
더 빨리 마음을 알아채려고 했었던 것이
실은 오지랖이었던 것임을.
한해 내내 아프고 아파서
인정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그만하기로 한다.
나를 좀 더 챙겨주기로 마음을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