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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05 19:41

3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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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이다.

원래는 어제 썬군을 만났어야 했지만 이 친구는 나이 먹을수록 점점 더 골골하여 자주 아프고 약속을 맨날 빵꾸낸다. 지 생일 전주로 약속한 게 밀리고 밀려 어제였는데 또다시 취소. 우린 만날 수 있을까.


하여 어젠 바쁘디 바쁜 기민 씨를 만나 워커바웃에서 맛있는 저녁을 먹었다. 우리는 나이차에 관계 없이 처음부터 서로를 나현 씨 기민 씨 하면서 이야기했고, 가까이 지내면서 시간이 지나도 서로 반말을 하지 않고 지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전에는 새파랗게 어린 사람이 누구 씨- 하고 부르는 게 괜히 거슬리고 기분 나빴는데, 나는 그게 내가 상하관계에 익숙하고 나이 따지는 꼰대여서 그런 것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건 그냥, 그렇게 부르는 상대가 나에게 호감의 대상인가 아닌가의 차이였을 뿐. 나이 차가 얼마든, 상대가 좋으면 서로 배려하게 되고 호칭도 서로가 만족하는 것으로 찾아가게 된다는 것이 내가 내린 결론이다. 아, 또 하나. 역시 나는 편애의 아이콘이었다.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뭐든. 호호.


종일 집에 있었다.

생각보다 일찍 일어났지만, 많이 누워 있었다. 그리고 라디오를 듣고, 게임도 좀 하고, 화장실 갔다가 도로 누워서 딩굴딩굴디딩굴.


엄마가 나 병원에 있을 때 해 오신 반찬이 생각나서 엄마가 알려준 방법대로 해보았다. 하지만 역시 엄마를 단번에 따라잡을 순 없지. 냄비를 살짝 태우기도 했고 맛도 달라서 기분이 상했다. 엄마한테 전화를 걸었다. 엄마, 왜 안 돼? 맛이 이상해. 그리고 태웠어. 짜증나.  엄마는 기분 좋게 웃으면서, 아니, 나는 나이가 이렇게 됐는데도 계란후라이를 못해서 이렇게 태운다? 한다. 웃음이 났다.


우리 엄마는 이런 엄마. 엄마는 언제나 나를 이렇게 키웠지.

내가 못해도 괜찮고, 엄마도 못했고, 또 해보면 괜찮을 거고, 아니면 이렇게 해보면 또 괜찮아지고. 등등.

예의없으면 매를 들었지만, 실수나 실패에 대해서는 나를 놀라게 하는 반응은 없었다. 대신 언제나 같이 해주던 엄마.

- 니가 한 게 영 맛이 없을 리가 없는데. 밑에 탄 것만 골라서 버리고 이렇게 해 봐. 아마 니가 올리고당을 좀 덜 넣었을 거야. 달게 먹으면 살찌니까 조금 넣느라고 그랬구나. 두 바퀴만 더 둘러 봐. 그리고 나서 이렇게 저렇게 해. 엄마는 탄 계란 어떡하니. 호호.


엄마 말대로 나는 덜 달게 하느라 올리고당을 아주 조금 넣었고 그래서 결과적으로 엄마가 해준 맛이 안 났던 거였다. 한숨 쉬고 눈 딱 감고 세 바퀴를 슉슉 돌리고, 다시 불을 올려 시간을 기다렸더니. 역시. 엄마. 엄마는 내 성격을 너무나 잘 안다. 금세 엄마의 손길이 담긴 반찬이 됐다.


모르겠다. 늘 생각한다.  

난 엄마처럼 할 수 있을까.

서른여덟의 나. 엄마가 될 수 있을까. 뭐든 잘할 수 있을까. 우리엄마처럼.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한 공부는 해도 해도 부족한 것만 같다.

그래서 흔히 하는 실수가, 좋은 사람을 만나자. 하는 것.

내가 좋은 사람이 아니고서야, 좋은 사람을 가까이 둔다 해도 알아 볼 수 있을까.

부족한 상태에서 바라보는 '좋은'은 딱 내 수준만큼의 '좋음'이라서 늘 실패였다.


언제나 내 안에서 시작되는 관계의 문제. 어려워 어려워.

-씨에서 다시마를 지나 관계의 문제에 봉착한 일요일 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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