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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31 09:07

12월 31일(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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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옮겨 온 새 숙소에서 잠을 자고 일어났다. 

마음씨 좋아 보이는 주인 부부가 있는 시골의 외딴 집이었다. 6시가 되자 산책도 나갈 수 없이 깜깜해진 주위를 보면서 아, 내가 정말 섬에서도 시골 안쪽으로 들어왔구나 싶었다. 


12월 31일. 

2017년 마지막 날 아침. 


새해 카운트다운은 대부분 통영에서 엄마와 같이 하는 편이었다. 연말에 특별한 일이 없으면 며칠씩 집에 내려가 있고 그랬으니까. 이렇게 해외에서 가족 아닌 다른 사람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일은 거의 처음 아닐까. 


텀블벅에 <연말정산> 프로젝트가 있던데. 일찍 알았더라면 아마 그거 사와서 채우는 재미에 시간을 꽤 보낼 수 있었을 텐데 아쉽다. 한해 동안 뭘 했는지 정리하는 데에도 이제 도움이 필요하다니. 세상이 편리해진 건지 내가 게을러진 건지 점점 종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삶이 나아가는 것 같다. 


나는 28일-29일에 걸쳐 올해 만났던 사람들 중에서 인사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나름대로의 종무식(?)을 거행하였다. 서로 덕담 주고 받으며, 고마웠다,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와 같은 인사를 나누는 게 일반적인데 준엽오빠의 메시지가 유독 마음이 아프달까 아니면 목이 메었달까, 문자로 뭔가 토해내듯 나에게 말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까지 할 정도였다. 


[대상포진은 좀 나아지셨나... 난 목이 안 돌아가서 꼼짝 못하다가 삼일만에 일어나 앉았구먼ㅋ 술도 별로 못 먹고 놀지도 못하는데 체력은 딸려서 자꾸 고장나니 억울하구나ㅠㅜ 꾸역꾸역 급한 일만 하는데도 힘겨워서 만날 사람도 못 만나고 새로운 사람도 못 만나고 역시 억울하구나... 젊어질 순 없으니 앞으론 더 심해지려나ㅠㅜ 회춘은 힘들어도 더 빨리 늙진 않게 몸 마음 챙기자꾸나ㅋ 도움은커녕 술 한잔 못 사서 너무 미안혀 죽겄네 1월에 용건없이 한잔 혀ㅋ 내년에는 대상포진 두려움 없이 살아내기를! ]


이 긴 문자가 한 뭉텅이로 왔으니 내가 얼마나 놀라. 


물론 그 전에 나도 오빠에게, 가장 먼저 톡을 했지. 다른 사람에 앞서서. 올해 다시 보게 돼 좋다, 오빠가 특히 우리들 중에서 건강했으면 좋겠다, 연습 때나 공연 때 오빠랑 연극 이야기 하는 시간이 참 즐거웠다 내년에도 즐거울 수 있으면 좋겠다, 새해 복 많이 받아라, 그리고 제발 건강해라. 고맙다. 또 보자. 


그래, 연극. 연극 때문이었다. 이 형과 내가 다시 만나게 된 것. 우리가 연말에 이런 문자를 주고 받게 된 것. 학교 선후배 사이기는 하지만 정작 학교에서는 모르고 지낸 우리는 연극 때문에 서로를 알게 됐다. 시간이 빠르게 흘렀다. 오빠는 이제 마흔, 나는 서른아홉, 우리가 대학에서부터 관계를 맺고 지냈더라면 인생의 반을 알고 지냈을 나이가 되는 것인데 그러기엔 우리 중 누구도 서로에게 선배이거나 후배이지 않았던 것이 참 다행이라면 다행. 


같이 한번 해, 작품 한번 해야지, 그런 이야기를 한 사람은 우린데 정작 몇 년 사이에 작업할 때마다 우리 둘만 뺀 나머지 경우의 수는 다 한번씩 한 것 같다. 편육이라는 제목의 짧은 이야기가 있었는데 뮤지컬로 만들자고 그래도 꽤 디벨롭 했던 걸로 기억한다. 하지만 그것 역시 급한 불을 꺼야 했던 어느 시절 오빠가 다른 버전으로 만들어서 그냥 해버렸지. 한동안 내가 엄청 괴롭혔다 그걸로.

-나랑 하자며, 나랑 하자며 오빠 그거. 



올해 1월은 별다를 것 없었다. 아닌가. 다친 채로, 깁스한 발로 통영에서 울적하게 살만 찌우고 있을 때였구나. 엄마가 해준 밥 먹으면서 둘이 그런 이야기를 했었다. 엄마 내가 이제 시집갈 건가 봐. 그래서 결혼 전에 엄마랑 같이 좋은 시간 보내라고 다쳤나 봐. 이런 되지도 않는 소리를 지껄였네, 아이구 참. 엄마는 또 뭐랬게. 그러게나 말이다. 이제 좋은 사람 생길려나 보다. - 하여튼 모녀의 쿵짝이 어지간해야 말이지. 


2월엔 다시 서울 컴백. 깁스를 풀고 재활치료를 시작했다. 그때 참 마음이 힘들었지. 수술받았던 독산동 병원까지는 너무 멀어서 혼자 다니기도 힘들었고, 다른 병원들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리고 수술했던 부위는 아직까지 남의 살 같은 느낌으로 나를 울적하게 했고, 겨우내 움직이지 못해서 찐 살들이 그 우울을 심화시켰던 암흑의 2월. 그나마 짧아서 다행이었지. (하하) 동네 시장 할머니들이 줄을 서는 한의원으로 찾아들어갔던 게 올 한 해 내 운명을 바꿔준 것 같다. 우리 경희현한의원 원장님께 이 영광을 돌려야 하는데. 침 맞다가 울어보기는 정말 처음이었다. 아파서 운 게 아니라 마음을 다독여주는 원장님의 치료 때문에 너무 놀라고 당황해서 눈물이 뚝뚝. 그리고 늘 갈 때마다 '나현아' 하고 이름을 불러주시는 게 영 아빠같은 느낌이 들어서 치료받으러 갈 때마다 설레기까지 했었지. 조만간 새해 인사를 한번 가야겠기는 한데, 아파야만 만날 수 있는 분이라 서로 얼굴 안 보는 게 좋은 사이인 것도 같고. 


월별 정산은 어렵구나. 


3월부터는 좀 찾아봐야 쓸 수 있겠다. 세상에 이렇게 마무리할 순 없어! 

((이러고 내년 거 쓸지도 모르겠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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