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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31 19:38

12월 31일(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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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튼 그래서, 3월. 


사실 2월엔 강화도를, 3월엔 속초를 한차례씩 다녀왔다. 기민이 동행해주었다. 집에만 틀어박혀 있었던 나를 위해 평소엔 잘 하지 않는 운전을 해 가며 다리가 불편한 나를 살펴주었다. 우리는 그냥 가만히 누워 책을 보거나 또 맛있는 것을 해 먹거나 하면서 작년의 우리를 달랬다. 의기있게 일을 헤쳐나가면서도 그때그때 난 생채기에 며칠씩 몸살을 앓기도 하니까 휴식과 보양의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고, 그때마다 우리는 조용히 다른 곳에 며칠 묵으면서 갇히기도 또 나가기도 했다. 


3월은 참 암흑의 시기였다. 일기를 들춰봐도 온통 우울, 우울. 일단 그때는 누구를 만나기 싫어 연락도 부러 피하고 그랬다. 사람을 만나면 이야기가 길어지고 그러다 보면 술도 한 잔 하고 싶고, 다리는 아프고, 또 사람들을 만나서 커피 한잔 해도 늘 뒷이야기가 돌고. (이제 좀 살만한가 보더라, 합의는 했다든? 뭐 그런 이야기들) 

그러다보니 집에만 있게 되고 활동이 적다보니 살이 찌고 울적하고.. 그런 뫼비우스의 띠 같은 러닝머신 위를 달리고 있었을 때다. 


4월까진 꾸준히 재활치료를 받았었다. 꼬박 6개월이 걸린 치료의 기간을 지나 나는 조금씩 기운을 되찾고 있었다. 벚꽃 대선의 대운까지 스물스물 느껴지던 때니까. 웅크리기만 하고 있을 순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쯤 시기에 아마 전산회계1급 시험도 봤고, 출판 관련 프로젝트를 하고 싶어서 종이를 배우러 다니고 그랬다. 웃겼던 건 최곰닷컴 홈페이지 호스팅을 맡겼던 나야나가 공중분해될 정도의 공격을 받아서 홈페이지를 날릴 뻔했던 사건. 결과적으로 여름쯤 다시 복구되긴 했지만, 그래서 그사이에는 접속을 할 수도, 내 지난 글들을 찾아서 볼 수도 없었다. 구구절절한 사연 없는 사람은 없었겠지만 나는 정말 슬프기 짝이 없었다. 10년치의 일기를 날릴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니 정말 한숨이 절로 나왔다. 더 열심히 글을 썼으면 더 슬펐을까? (열심히 안 써서 다행인가. 음.. ) 


5월은 날씨도 좋고 몸도 많이 회복된 상태여서, 종종 사람들 만나 조금씩 걷기도 하고 크고 작은 일들을 도모하기도 했던 시기다. 생각해보면 이때 한해의 운명이 결정된 것도 같다. 그 와중에 전시도 하나 했고, 끝난 뒤 도쿄를 다녀왔다. 남들보다 비교적 늦게 새해를 시작한 것인 만큼 몇 배는 뜨거운 여름이 되었던 것.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토론회 때의 성소수자 관련 발언 때문에 기민은 많이 힘들어 했다. 평소에는 잘 의식 못했던 것도 있었다. 내 친구는 당연히 너무나 눈앞에 존재하고 있는 현실의 사람인데, 존재에 대해 누군가에게 찬반을 묻는다는 것이 가당키나 한 일인지, 조차도 생각할 필요가 없는 것이라는 생각 자체가 어불성설 아닌가. 말꼬리를 물고 늘어질 수밖에 없는 그 부분, 바로 그런 부분이 우리 사회가 원하는 상식과 노선이 아예 다르다는 사실이 친구와 나를 슬프게 했다. 나는 몇 번이고 충격이었다. 그리고 그 불똥이 특이한(?) 곳으로 튀어서 훗날 나는 연극을 하게 된다. 


6월부터 나는 조금씩 퀴어프로젝트를 가동하기 시작했다. 기획서도 여기저기 내면서 하나둘 좋은 소식을 듣고, 비용을 잘 나눠쓰느라 바빴다. 사람을 만나고 모으고 또 순간의 선택을 구하는 위기를 연이어 겪어나가면서 아, 올 여름도 적잖게 덥겠구나 예감하기도 했다. 그렇게 7월에 공연일자를 확정하고, 8월 초에 캐스팅을 마무리해 9월까지, 쉬지 않고 대본 보고 회의하고 술마시고 연습하면서 공연을 맞이했다. 사람이 하는 일이라 사이사이 정말 다 때려치뿌까 싶은 욱, 하는 순간도 많았지만 나도 나이가 들어서인지 아니면 그냥저냥 견딜만해서인지 큰 탈 없이 잘 지나갔지 싶다. 가까운 사람 괴롭히는 못된 버릇은 아직도 못 고쳐서 조연출 못 살게 굴고 사과하는 일의 연속이었지만. 속으로는 나 버리지 마, 수없이 애정을 갈구하면서 센 척 강한 척 척척척 그렇게 걸음걸음 옮겼더니 10월이 왔다. 


기력을 소진하고 10월엔 그렇게 기다리던 삿포로행. 역시 기민과 함께. 

삿포로는 여행했던 그 어느 곳보다 좋았다. 도쿄도 좋고 지금 와 있는 오키나와도 좋지만 삿포로는 정말 내가 너무 사랑할 수밖에 없는 도시 그 자체. 눈 내린 삿포로는 아니었지만, 적당히 찬 바람과 걷기 편한 도로, 그리고 기민이 생일 선물로 잡아 준 괜찮은 숙소가 너무나 큰 위안이 됐다. 왕복 15만원이라는 황금티켓이 아니었더라면 사실 올해처럼 변변찮은 수입으로 여행하기 힘들었을 텐데 뭔가 열심히 일하고 받는 보상같은 여행이라 더 행복했다. 


11월은 도터스프라이버시 마마스해피니스, 한 해에 전시 한 번, 공연 두 번. 전에 없이 열심히 부지런히 살았던 나를 칭찬한다. 욕구가 목끝까지 차올랐을 때여서일까. 아니면 한해 내내 나를 살펴준 기민에 대한 고마움이 나를 쉬지 않도록 채찍질해주어서일까. 꽤 부지런을 떨었다. 그리고 여전히 그 안에서 받는 상처, 상처. 내가 준 상처도 적지 않았겠지. 사람을 울게 하고 자존심을 건드리고 악에 받치게 하고... 어쩔 수 없었다는 말로 포장하기도 지치는 그런 못된 짓을 안했다고 할 수 있나. 그렇게 생각해보면 내가 견딘 것들은 사실상 내가 준 것에 비해 그리 크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공연을 할 때마다 너무 힘들다. 죽을 만큼 부대낀다. 이거 그만해도 되지 않나, 그런 생각이 많이 든다. 그 정도까지 오면 센 척하느라고 괜찮다고 말할 수가 없을 정도니까 막 맨날 도망가고 싶고 아침에 눈 뜨기가 무겁고 그런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 작품을 하려고 고민한다. 왜 고민을 하고 있나. 좋아서겠지. 좋아서. 


12월. 드디어 12월이구나. 그 모든 것을 끝내고 12월에 정산도 마치고, 새로운 일도 시작하게 되고, 그러면서 완전히 무너져버렸다. 공연 마치고 한번 아플 때가 됐는데 그런 것 없이 지나가고 또 쉬는 틈 없이 다음 작업을 하고 여행 다녀 오고 하면서 긴장이 한번에 탁 풀어져 버렸나 보다. 감기를 보름을 앓고도 차도가 없더니 급기야는 대상포진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쩐지 편도가 부어 가라앉질 않다가 임파선까지 부어오른다 싶었다. 오키나와를 포기할 순 없으니 무조건 나아야했고, 꾸역꾸역 며칠을 집에서 자다 쉬다를 반복하며 겨우 끌어올린 컨디션으로 지금, 여기, 이 해의 마지막에 오키나와에 와 있다. 


사실 바다는 다를 것이 없다. 통영 바다와도 많이 닮아 있고, 마을도 길도 사람도 통영과 비슷한 느낌. 다만 이 곳에서는 어떤 방해도 없이(사실 아예 없진 않지만) 툭 내려놓고 쉴 수 있어서, 그리고 내가 뭘 알아들을 수가 없어서 더 좋을 뿐. 


외로운 건 마찬가지다. 외롭고 두려운 것. 그리고 점점 더 많은 생각에 빠져드는 것, 2018년에 대한 생각이 쌓이고 또 쌓이는 것. 괜찮나. 괜찮은가. 그런 마음이 점점 더 든다고밖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 와서 얻는 것은, 하고자 한 것에 대한 - 오기 전에 약속한 것에 대한 - 나의 의지를 한번더 살펴보고 다독이고, 오롯이 나에 대해서 집중할 수 있는 시간. 사실 집중하지 않더라도 그냥 나를 내버려두고 관조하는 것만으로도 좋다. 


오기 전에, 기분 나쁜 일이 있었다. 동기놈의 야비한 생각을 평소에도 읽지 못한 바는 아니지만 이번에는 좀 더 특히 별로였기 때문에 전의 나라면 한번 쏘아붙여봄직한 일이었는데 그냥, 그래, 하고 말았다. 당장에 웃으며 넘길 수 있는 그런 레벨까지는 아직 아닌데, 그래도, 그래, 하고 지나갈 수 있는 것까지는 됐나. 아니면 그냥 생각하기 싫었던 건 아닌가? 맞을지도 모르겠다. 그냥 너무 싫었다. 싫다고 말하지 않았을 뿐. 하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의식의 흐름대로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게 과연 연말정산이 맞는건지 모르겠네. 


내가 뭔가를 잘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는, 아, 잘하고 싶다, 하고 머리들고 서있지 말고 그냥 조금씩 하자. 


아 1년의 마무리를 어떻게 하면 좋지. 

- 우선 돌아가서, 나는 2017년의 마지막 사업 정산을 빠르게 마무리해야 한다. 정신 안 차리면 안 돼.. 비온뒤무지개재단 사업보고서를 마감한다. 

- 그리고 기획서를 쓰기 전에, 내가 올해 뭘 할지, 어떤 게 하고 싶은지 좀 자세하게 적어 본다. 하고 싶은 이야기,에 대해서, 내가 쓰는 것들에 한해서. 

- 하지만 뭐 계획대로 되는 게 어디있간디. 하루하루 열심히, 열중하는 내가 되길. 

- 건강하고 고요하게 쩌는 2018년을 맞이할 것이다. 


1월 2일이 수퍼문이랜다. 

일본에서 큰 달에게 빌어봐야겠다. 


2017년, 정말 애썼다. 잘가라 서른여덟. 

2018년, 큰 계획 없이 가족 모두 건강하고 행복하면 된다. 엄마한테 더 잘하자. 동생 자주 들여다보고. 


서른아홉의 내 인생도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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