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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17 10:25

2016년 2월,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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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하루를 꽉 채워서 딩굴거리기로 어제 자기 전에 다짐을 했지만 왠지 모를(사실은 알고 있는) 불안감에 벌떡 일어나서 주섬주섬 노트북을 켜서 머리맡에 펼쳐져 있는 앉은뱅이 상에 얹었다. 한 문장을 쓰면 막히고, 모르겠다 다음 문장, 하고 넘어가도 또 막히고, 상하고 같이 주저앉아서 엉엉 울고 싶은 심정으로 멍하게 있다가 페이스북 앱을 켰는데 이 글을 줄줄 잘도 쓰고 있길래 다시 컴퓨터에 옮겨 치는 미친 짓을 하는 중.

- 2016. 03. 01

  

어릴 때다.

이 즈음이면 늘 아빠가 새 교과서를 가져와 보라고 하셨다. 보통 새학년 새학기를 시작하는 때였으니까 책을 싸주시려고 그랬지.

희고 매끈하게 잘린 종이를, 더 깨끗한 면을 겉으로, 꼼꼼하게, 접히는 부분도 잘 도려내어 뭉툭하게 겹쳐지지 않도록, 유난스러운 딸의 새 책을 오래오래 새것처럼 쓸 수 있게 정성들여 싸주셨다. 아빠는 필체가 좋았다. 책을 다 싼 뒤에는 하아얀 책 맨앞에 과목이름을 멋진 글씨로 써주기까지 하셨다.

특히 한문을 잘 쓰셨던 아빠는 내가 중학교에 들어가자 한문 책 표지에는 꼭 한자로 한문이라고 써 주셨는데, 그게 그렇게 좋았다.

  

머리커지고 또 때마침 팬시문구류가 번성기를 맞이했을 무렵에는 책크기에 맞게 온갖 예쁜 포장지들이 나와서 더 이상 아빠가 책을 싸주지 않아도 되게 됐지만, 지금 생각하니 한문책만큼은 끝까지 아빠한테 싸달라고 할걸 그랬다.

  

동생과 엄마는 뜬금없이 오늘 아빠한테 다녀왔다고 한다. 나는 아빠를 떠나보낸 뒤 한번도 간 적이 없다. 아빠나무는 건강하게 잘 있다고 한다. 나는 보고싶어서 갈 수가 없다.

  

3월이 온다.

정신을 차리기로.

- 2016. 02. 29

  

초롱같던 엄마가 자꾸만 무언가를 잊을 때,

부쩍 그런 일이 잦아질 때,

나는 막연하게 두렵고 너무 슬프다.

  

엄마가 겪었던 어떤 일(주로 억울하게 당한 일이라든가 부당한 일 같은 것)에 대해서 구구절절 하소연 하실 때면, 전에는 당연히 상대의 잘못이라고 생각하고 엄마편에 서서 신랄하게 상대를 까곤 했는데, 이제는 그게 아닐 수도 있다는 항목이 상황파악의 단계에서 객관식 보기에 들어있다는 게 너무 슬프다. 물론 그래도 여전히 더 격앙된 톤을 유지하며 전화로 엄마편을 들어 같이 욕해주는 건 내 역할이긴 하다.

  

여장부였던 엄마가, 세상 누구보다 날카롭고 기민했던 엄마가, 이제는 당신의 판단을 불안해 한다는 게, 나에게 많은 것을 의지해 오신다는 게 좀 많이 슬프다.

  

나는 영영 엄마 편이지만.

엄마의 노년기를 어떻게 지켜드려야 할지, 나의 태도와 자세가 어때야 엄마가 덜 슬프실지, 이런 것도 공부가 필요한 일인지, 이 슬픈 고민을 자꾸 미루기만 해서는 안되는 때가 왔다는 게 더 슬프다.

- 2016. 02. 19

  

불과 한달 전 묵었던 도쿄 어느 동네 숙소 앞 횡단보도를 다시 건너가고 싶은 밤

  

감기 같은데 남들처럼 며칠을 끙끙 앓을 것 같지는 않고. 다만 머리(사실 머리통이라고 쓰고 싶음, 그래야 정확함)만 우주에 동동 띄워놓은 것 같은 무중력 상태를 몇 시간째 느끼고 있는 중.

  

적당히 서늘한 거리를 살살 걸어다니면, ! 하고 귀가 뚫릴 것만 같다. 꼬마병 오렌지주스 딸 때 나는 소리처럼, !

  

맨다리에 긴 잠옷을 입고 잘 때 돌돌 말려올라가서 통통 배가 드러나도 그저 시원한 느낌만 드는 그런 밤날씨였으면 좋겠다.

- 2016. 02. 16

  

우리 땅이 3년 전이네.

연휴 내내 그냥 볼 때는 몰랐는데 예전 사진 같은 거 보면 지금 나이를 많이 먹은 것 같다. 피부도 눈도 모질도..

아직은 건강한 편이지만 맘 한구석은 늘 걱정..

  

처음 데려올 때 페키나 시츄는 수명이 7-8년이 평균이라 했었는데.. 땅이는 올해 9살이다.

  

중간에 디스크로 병원가서 내 간 떨어지게 한 때를 제외하면 큰 탈 없이 아직은 가족으로 잘 살고 있다. 물론 중상급 탈은 많았지. 립밤을 통째로 깨먹어서 울면서 병원가게 한 일, 처음 찡코막혀 호흡곤란왔을 때 죽는 건 줄 알고 처울면서 이해송한테 전화해서 통곡하게 한 일, 피부에 곰팡이 생긴 줄도 모르고 꼬리다리 막 씹어제끼는 거 혼내다가 나중에 알고 또 대성통곡하게 한 일, 디스크 때문에 소리지르면서 우는 거 보고 나도 같이 소리지르고 울게 한 일, 중성화하고 다리절면서도 배변패드로 가서 쉬하는 거 보고 엄마랑 나랑 일주일동안 전화붙들고 운 일, 혼자 두고 힘들게 일다닐 때 아침에 일어나니 가방을 뒤져서 온갖걸 다 씹어놓은 걸 보고 속상해서 왜 그랬냐고 엉덩이를 때려줬는데 놀라서 내품에서 오줌 싼 걸 보고 다시는 버려진 기억이 있는 너를 때리지 않겠다고 종일 펑펑 울면서 토닥였던 일 등등.

적고보니 다 나년이 원인이었는데 내가 운 일 뿐이네. 내가 잘못했네ㅠㅜ

  

개에 대해 무지하고 부족했던 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난한 내 곁으로 와서 기꺼이 위로와 기쁨이 되어준 네가 오래오래 건강하면 좋겠다.

- 2016. 02. 12

  

차례 마치고 밥 먹고 정리하고

온 가족의 낮잠타임

햇빛이 참 따뜻하고 집은 고요하다.

이런 평온한 명절이 내 생애 몇 번이나 남았을까

  

엄마가 주는 식혜를 싫어싫어 하면서 머리맡에 뒀다가 내가 먹고 싶은 시간에 먹고, 좋아하는 채널 돌리다가 멈춰서 보고, 설거지를 안 해도 되고, 배 돌돌 말려올라간 옷 입고 소파에 누워있다가 잠시 잠들어도 되고, 밤 늦게 안 자고 폰 만져도 되고, 개랑 나랑 둘이서 귤 하나 까서 같이 노나먹고, 집에선 막막 내 마음대로 해도 아이구 우리딸 하는 엄마가 있는 명절

좀 철 없고 싸가지 없이 엄마 옆에서 찡찡대는 맛이 있는 이런 명절

  

그러나 서로 말 안하지만 약간 쓸쓸한 느낌이 있는 그런 설명절 연휴가 지나간다.

  

개는 엄마 옆에서 간식을 얻어먹고 즐겁고

동생은 큰 방에서 우리는 마루에서 딩굴딩굴

이만하면 편하고 따숩다.

-2016. 02.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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